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붙임. 대전 29개 기관 업무추진비 공개 실태 평가표 1부.
[성명] 대전시 AI 행정, '기구 신설'에 부쳐, '정보공개의 표준화'가 먼저다
민선 9기 대전광역시가 행정의 인공지능(AI) 도입을 예고하며 시장 직속 AI 전담 기구를 두겠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반복 업무를 줄이고 행정의 효율과 투명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잘 준비된 AI 행정은 시민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지금 대전시의 발표가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에 앞서 반드시 짚어야 할 준비 과정을 건너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최근 한국사회에 빠르게 도입되고 특히 범정부차원에서 적극 추진하는 AI도입이 무분별하게 진행된다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행정의 AI도입 기구를 만든다면, 그 기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업무 범위로 삼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먼저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목적과 범위, 방향이 흐릿한 채 화려한 전망만을 내새워서는 안된다.
AI는 마법이 아니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행정이 가진 정보가 제각각이고, 기준이 자의적이며, 시민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라면, 그 위에 아무리 값비싼 AI를 얹어도 결과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그럴듯한 거짓,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을 사실처럼 내놓는다. 방향성과 목적 없이 도입한 AI행정은 예상치 못한 사각지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대전시와 산하기관의 업무추진비, 계약 내역, 예산 자료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해 왔다. 그 과정에서 대전 행정에 지금 시급한 과제가 'AI 기구 신설'만이 아니라 '정보의 표준화와 공개 기준의 정비'라는 것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단적인 예가 업무추진비다. 실제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대전시·시의회, 5개 구청과 구의회, 17개 산하기관까지 29개 기관의 업무추진비 최신 공개파일을 일일이 내려받아 확인한 결과, 같은 대전 행정임에도 공개 양식은 제각각이었다. 파일 형식부터 엑셀·PDF·구형 손상파일·압축파일이 뒤섞여 있고, 대전시 본청과 시의회는 PDF로만 공개한다. 지출 장소의 주소(소재지)를 공개하는 곳은 29곳 중 11곳뿐이어서, 실제 어느 곳에서 사용되었는지 검증이 안되는 상황이다. 정작 규모가 큰 대전시 본청·시의회는 주소를 밝히지 않는 반면 일부 구청이 더 상세히 공개하는 상황이다. 공개 대상 범위도 양식도, 파일형태도 다른, 기준도 형식도 통일되지 않은 정보 위에서는 시민의 비교·검증도, AI의 신뢰성 있는 학습·분석도 불가능하다. 대전시가 AI 행정을 말하기에 앞서 정보공개 기준과 양식부터 표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는 민선8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제각각인 데이터를, AI는 무슨 수로 정확하게 학습하고 분석하겠는가? 표준화되지 않은 정보 위에 세운 AI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틀린 답'을 양산하는 값비싼 장치가 될 뿐이다. 정보공개의 자의적 해석 기준을 정비하고, 공개 양식을 시민 접근성과 기계 판독성을 함께 고려한 개방형 형식으로 제공하는 일이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행정의 기본 책무다.
우리가 성급한 AI 도입을 경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민간에서 그 부작용이 충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이 '효율'과 '고객 편의'를 앞세워 AI 상담사와 챗봇을 도입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용자는 정해진 답만 반복하는 기계 앞에서 화만 쌓아가다가, 사람 상담원에게 닿기까지 몇 겹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복잡한 사정, 예외적인 상황, 억울한 민원일수록 AI는 무력했다. '편의'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실제로는 약자에게 더 불편한 시스템이었다. 화가 난 민원인의 분노는 다시 인간 상담사가 감당해야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취약계층에게 이런 변화는 서비스의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배제의 장벽이 되기 쉽다. 행정은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이윤이 나지 않는 고객을 외면할 수 있어도, 행정은 그래서는 안 된다. 가장 도움이 절실한 시민이 가장 먼저 소외되는 AI 행정이라면, 그것은 도입의 취지를 스스로 배반하는 일이다.
또 하나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는 일자리다. 민간의 AI 도입은 상담·안내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만약 대전시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AI를 밀어붙인다면, 공공부문과 위탁·용역 노동자들이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사람의 일자리를 밀어내는 방식의 '혁신'을,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이 앞장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 AI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AI 행정은 시민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민을 밀어내는 도구가 되고 만다.
지금 시민사회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대전시가 해야 할 일은 우려를 무시한 채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기대와 우려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AI를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그 방향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행정이 밀실에서 정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하기 전에, 시민과 공무원 모두의 AI 문해력를 함께 키우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을 이해하고 판단할 힘과 지식이 사회에 갖춰지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두르면, 그 편익도 특정 계층에 쏠리게 마련이다.
행정의 AI 도입은 '무엇을 새로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것이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대전시가 진정 시민을 위한 AI 행정을 원한다면, AI 행정의 개인정보 보호 원칙과 윤리 원칙을 먼저 수립하고, 시민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활용·보관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 그리고 AI의 적용 범위·목적·방향성을 시민사회 및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하고 AI 도입이 공공·위탁 노동자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용 안정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한다.
2026년 7월 2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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